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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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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94 작성일 2002-01-31 01: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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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고기와 제비집
작성자 한국인
내용
쇠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불그스름한 조명을 비춰 싱싱한 식품처럼 꾸미는 商術이나, 말고기를 노천 좌판에 벌여놓고 파는 상행위와는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쇠고기가 우리 음식에서 중요한 식품이듯 말고기는 중국 내륙 오지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말을 가족의 일부로 여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면서도 그 고기를 식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문화가 野蠻이라면, 살아서 움직이는 나비 애벌레를 별미로 여기는 남방 중국이나, 멸종 직전에 이른 희귀한 물고기를 먹지 못해 안달하는, 자칭 문화 민족이라고 어깨를 재는 유럽인도 野蠻이라는 비난을 벗어날 길이 없다. 따라서 말고기·쥐·나비의 애벌레는 토속 식품이므로 자기들이 즐기는 식품과 비교하여 이를 野蠻이니 저질 문화라고 貶毁할 수는 없다.
매미 유충인 지잠(地蠶)도 마찬가지다.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굼벵이가 열대 우림 오지 사람들에게는 토속 식품인 반면 우리는 성인병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써 왔던 단방이니 이걸 먹는다고 경원하지도 않거니와 비난하지도 않는다.
토속 음식은 자연 환경과 전통적인 생활 습관에 따라 대를 이어 나가면서 장기간에 걸쳐 자연스레 만들어졌고, 간혹 종교적인 계율까지도 작용하여 장기간에 걸쳐 완성된 문화이므로 이걸 놓고 장단을 논하기 어렵거니와 시빗거리로 삼을 수도 없다.
경우에 따라 민속 신앙의 상징물이 토속 음식으로 변하는 것도 있지만 이것들은 한결같이 민족 고유의 정서가 깃들어 있으므로 특정 식품만을 쳐들어 자기 문화와 비교하는 思考 方式도 결코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눈과 얼음이 생활 터전인 민족은 그 환경에서 서식하는 곰을 비롯한 육식 동물이 토속 음식의 재료가 될 수밖에 없고, 열대 지방을 生活 環境으로 가진 민족은 거기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송충이·개미·달팽이가 토속 식품이기 마련이며, 건조한 환경을 고향으로 가진 민족은 마유(馬乳)와 땅강아지를 일상적인 식품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민족마다 조상 때부터 뿌리를 박고 사는 자연 환경은 모두 다르고 전통적인 생활 습관 또한 같을 수 없으므로 곳에 따라 애완용이던 것이 식품이 될 수 있고, 민속 신앙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던 것이 증오와 금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역겹고 징그럽다는 느낌은 자기 문화와 비교했을 때 갖게 되는 정서에 불과할 뿐, 특정 식품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思考 方式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기에 길든, 빗나간 우월감에서 비롯된 좁은 식견이다.
우리 토종 식품으로 굳게 자리잡은 개고기도 마찬가지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 8월령에, 며느리 근친 물목으로 개고기가 보이고, 이보다 200년 앞선 조선 현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憲逸의 어머니인 장씨는, 규곤시의방에다 개고기 조리법을 매우 다양하고 자세하게 기술하여 후대에 전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편찬된 조리서인 음식방문에도 개고기 조리법을 기술하여 놓았다.
개고기는 식용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 三伏條에는, 狗醬으로 보신에 효험을 볼 수 있다는 기록이 보이고, 동의보감에서도 수캐 고기가 오로칠상(五勞七傷)을 다스리고 음위불기(陰萎 起) 치료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개고기가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기는 했지만 모든 개를 한데 묶어 무차별로 식용으로 삼지는 않았다.
타고난 성질이나 생김새에 맞춰 전견(田犬)과 폐견(吠犬)을 쓰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개를 가축화하여 여러 용도에 쓴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는 아니었다.
寒 乾燥하고 荒凉한 雪原에서는 使役에, 平滑한 草原에서는 牧羊犬으로, 肥沃한 土質과 溫和한 기후 속에서 생활을 꾸렸던 민족은 愛玩犬·警備犬 등 각자의 生活 環境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순탄한 환경 속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문화를 형성한 민족은, 荒凉하고 瘠薄한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사리 이룩한 다른 민족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를 애써 외면하고 배척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종교에 음식 문화까지 섞어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하면서 상대방 문화를 비하하거나 배척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에 흡수·동화시키기에만 전념했을 뿐 전통 문화와 겪게 되는 숱한 갈등 따위는 숫제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따라서 개고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문화는, 개고기를 식품으로 만든 문화가 썩 맘에 들지 않을 뿐더러 역겹기까지 했을 것이다.
일부 식도락가들이 개고기를 먹는 우리 음식 문화에서 거부감을 느끼듯, 제비집과 달팽이, 상어 지느러미와 그 알, 그리고 철갑상어의 알과 곰의 발바닥까지를 별미로 치는 별난 취미가 우리에게는 생경하지 않을 수 없다.
열대 보르네오에서, 그것도 번식기에만 아스라하게 높은 동굴 벽 150m 되는 곳에다 붙여서 자신의 타액만 토해 집을 짓는 새가 흰둥지굴제비다. 검은둥지굴제비도 자신의 胸毛에 타액을 개어 굴 바닥에서 무려 70m 높이의 벽에 붙여서 집을 짓는다.
그 집은 일년에 단 한 번만 종족 번식을 위해 무려 보름 동안에 걸쳐 온갖 정성을 다 들여 만든 보금자리다.
모든 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숫자로 따져 객관성을 강조하는 데 버릇이 붙은 식도락가들이, 영양가커녕 되게 맛도 없는 이 제비집을 재료로 하여 만든 수프에 열광하는 취미가, 개고기를 먹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듯 이상야릇한 것이다.
이 수프도 1,60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는 전통을 자랑하고 보면 그 얼마나 많은 제비들이 그 동안에 수난을 당해 왔겠는가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면서도 동물 사랑을 부르짖으며 개고기를 먹는 문화를 거부한다면 ,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조류 사냥과 자연 파괴를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변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민족의 전통 문화는 몇몇 특정인의 의지에 따라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음식은 비록 생명을 유지하는 유기물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수 세대에 걸쳐 토양에 맞게 만들어지고 형성되었으므로 쉽게 버리거나 바꿔치울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자기 기준에 맞춰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를 비교하거나 특정 문화만을 선호하라고 강요하는 버릇은 지극히 폐쇄적인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아니면 특정 종교에만 매달린 끝에서 비롯된 좁은 소견이다.
국제 교류는 당연한 추세이지만 외국인이 보면 혐오감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린다고 하여 전통 음식을 외면하고 구석으로 몰아붙이겠다는 작정은 사대사상에만 젖은 데에서 비롯된 줏대 없는 발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물을 보호한다는 목소리는 높이면서도 뒷구멍으로는 곰을 무분별하게 살육하여 그 발바닥을 취하고, 산란기에 이른 철갑상어의 알에 눈독을 들여 무차별로 남획함으로써 씨를 말리고 있는 행동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가당착이다.
김치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스럽다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거나 붉히지 않고 꿋꿋하게 지켜 온 까닭은, 거기에 우리의 오랜 정서와 전통과 문화가 배어들어 있어서이다.
이젠 외국인의 눈치만 살피며 굽실거리는 버릇을 버리고 개고기도, 김치처럼 떳떳하게 내놓을 때가 되었다.
누가 별스럽게 비아냥거려도 버려서는 안될 우리의 전통적인 토속 식품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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