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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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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143 작성일 2001-05-12 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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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만원으로 뭘 할까
작성자 공직협
내용
강릉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제목 : 부수입 오만원 [부제목 : 자존심을 돌려다오]

솔직히 실명을 밝힐수 없어 미안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시간과 장소의 표현을 약간 변형하지만 실제상황임을 밝힙니다.

장소는 대한민국 000면 고개길 시간은 오월 0일
우리면에는 타 시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길이 있다. 겨울에는 당연히 설해대책으로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다.
그런데 사고당일 고개길을 넘어가던 21톤 덤프의 적재함이 약간 열렸는지 고개 오르막길 초입부터 고개마루까지 자갈(쇄석)을 좍 깔아놓고 지나갔다. 시간이 아침 이른시각 이었는지 덤프 운전자도 어두워서 자갈을 흘리는줄 모르고 달렸고 고개를 다 넘어가도록 반대편에서 오던 대향차량이 없었는지 신고도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보니 고개길 전체에 자갈을 쫙 펼쳐놓은게 거의 예술경지다. 한 마디로 [난리났네 난리났어] 이다.
별수없이 전직원 출동. 삽으로, 가래로, 비자루로 4키로미터가 넘는 고개길을 치우느라고 삭신이 벅적지근하게 되었다.

토목직 도로담당은 입이 한자나 나와 연신 ㅆ ㅉ 이 나온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쓸데없는데 시간과 정력을 낭비함에 짜증도 났겠지만 자기 업무도 아닌일에 바쁜 하루를 꼬박 소비하게 된 직원들 한테 미안한 마음에 더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우선 경사가 급한 구간을 먼저 치우고 오후에 전직원이 간격을 벌려서 자갈을 적게 흘린 구간을 비자루로 쓸고 있었다.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갈 즈음 나의 위치는 직원들과 떨어져 고개길 초입에 있었는데, 고개길을 넘어와서 지나가던 웬 21톤 덤프트럭이 끽 멈춰 서더니 운전자가 내게 다가와서 고생 많다고 하면서 음료수나 사 먹어라고 하면서 5만원을 지갑에 서 꺼내 주고는 황급히 사라졌다. 황당해서 안받으려고 했으나 그 운전자는 돈을 길바닥에 놔 두고는 횡 하니 사라져 버렸다.
덤프트럭 번호를 봐 두어야 하는데, 번호판 보이는 덤프트럭이 대한민국에 몇대나 되나. 그냥 횡하니 커브길을 돌아 내뺀다.
... ... ... ...
내 생각에
아마 저넘이 새벽에 자갈을 흘리고 간 넘이겠지, 목적지에 당도하여 적재함을 들고 자갈을 부어보니 반도 안남았을 것이고 아차 길바닥이 흘렸구나 하고 생각했을 거고, 고갯길을 넘어오다 직원들이 길을 쓸고 있으니 미안하기도 했을것이고 또 내려서 신분을 밝히고 자수하려니 직원들 여럿 있는데 말하기 뭣 했을 것이고, 쓰린가슴 부여안고 고개길 다 내려와서는 따로 떨어져 있는 나에게 그냥 5만원으로 자기의 잘못과 미안한 마음과 죄값을 무마하려고 생각했었나 보다.

길바닥에 너브러진 오만원을 줏었다.

여기서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돈을 어떻게 한담? 참 고민되네. 행정직이 도로쓸고 돈 오만원 부수입 잡기 어디 쉬운 일인가?
석가모니 부처 말 처럼 삼천년 묵은 거북이 대양을 삼천년이나 떠돌다가 통나무를 만나 잠시 쉬어갈 운명보다 더 희귀한 경우가 아닌가?
연말 정산시 연봉 이천만원 못넘는데, 실 수령액 백삼십만원 남짓 받아 노모와 처자식 다섯식구 먹고살기 고단한데, 땅에 떨어진 공돈 오만원이 어디 아이 이름이냐? 몇일 있으면 어린이날에 어버이날이 다가 오는데, 이돈 오만원이면 그냥 가족들 외식한번 시켜줄수 있는데, 그냥 자동차 기름을 넣어 버릴까? 연료통 게이지도 거의 바닥을 가르키고 있는데. ... ...
벼라별 생각을 다하고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있으니 직원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패잔병 마냥 터덜터덜 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일어서면서 이 돈으로 직원들에에 음료수나 살까? 돈의 출처를 직원들 한테 밝혀야 하나. 자갈돌을 흘리고 간 범인을 잡지 못한 비난은 어떻게 무마해야 하나, 참 난감할 따름이라. 괜히 오만원 줏었다가 머리 새치 생기겠네.
머리 복잡헌데, 계장이 다가와서 오늘 고생했다며 물병을 주어서 물을 마시고 있으니까 오늘 저녁밥을 사겠단다.

저녁을 먹고 계장님에게 돈의 출처는 말하지 못하고 밥값에 보태라고 낮에 줏었던 오만원을 주니 한사코 거부하면서 돌려준다. 어쩌지 못하고 또 주머니에 받아 넣었다.

참 내 이돈을 어쩐다. 공무원생활 십여년에 월급 이외엔 생각도 해본적이 없는데, 청빈이라 하면 자화자찬이 되겠고, 남들이 들어면 요령없고 고지식하다 하겠지만, 누가 뭐래도 난 깨끝이 살았노라 말할수 있었는데, 이 오만원 때문에 이날 이태껏 살아온 내 자존심을 꺽기 싫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조물락 거리다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까지 넘기고 말았다.

난 참 한심한 놈인가 보다. 돈 오만원이 이렇듯 나를 괴릅히다니. 지난 일주일간 내가 당한 고통은 오만원보다 크고, 가슴속의 상처는 돈으로 환산할수 없는 엄청난 액수이며 영원히 치유되지 못하리라.

나쁜놈 덤프 운전사, 오만원으로 자기는 면피하면서 나에게는 이렇듯 고통을 주는구나.

내가 월급타서 먹고 사는 걱정만 없어도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목구녕이 포도청인 말단 면서기가 갑자기 싫어진다. 공무원생활 열심히 하여 국가에 충성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면 적어도 먹고살 걱정, 자식 교육비 걱정, 한평생을 직장다니고 난후 노후걱정없이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회만 되면 이제 이생활도 그만두고 싶다. 즐거움은 없고 고통만 있는 이 생활이 지겨워 진다.

고요한 신새벽에 즐겨 사색하지 못하고 단돈 오만원에 짜증스러워 해야하는 가난이 난 정말 싫다.

날이 밝으면 이돈 오만원을 관내 고아원에 갖다 주어야 겠다. 익명으루.

서기 2001년 5월 9일 04:30 단돈오만원에 일주일 고통받은
대한민국 말단 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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